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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분쟁 Ⅱ] 해결되지 않는 갈등, 꺼지지 않는 ‘화약고’
[영토분쟁 Ⅱ] 해결되지 않는 갈등, 꺼지지 않는 ‘화약고’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9.10.02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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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되지 않는 갈등, 꺼지지 않는 ‘화약고’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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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독도가 자신들의 합법적 영토라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는 것처럼 다른 지역의 분쟁 당사국들도 서로 다른 명칭으로 해당 영토를 부르며 자존심 싸움을 벌인다. 지구 표면에 700개가 넘는 육지와 해양 국경선이 그어져 있지만, 조금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센카쿠(댜오위다오)열도’ 갈등

세계 주요 영토분쟁은 보통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를 포기하면서 제대로 된 국경 설정을 돕지 않았거나 해저 자원을 둘러싼 분쟁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민족적 자존심이나 애국주의 고취를 통한 내부 환기용으로 발생하는 사례도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과 중국 사이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의 긴장이 대표적인 분쟁 사례로 꼽힌다. 센카쿠 열도는 일본 오키나와의 서남쪽 약 410km와 중국 대륙의 동쪽 약 330km, 대만의 북동쪽 약 170km 떨어진 동중국해상에 위치한 8개 무인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지만 중국과 대만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댜오위다오’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고유영토이며 1895년 청일전쟁 때 패전한 이후 시모노세키조약으로 일본에 일시 할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영토를 돌려받아야 하는데 일본이 사실상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일본은 무주지 선점 논리를 들어 항변한다. 이미 1885년에 무주지를 선점하였으며,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 의해 국제법적으로 적법하게 센카쿠열도를 이양 받았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를 둘러싼 갈등은 도서 영유권 귀속 문제뿐만 아니라 해양자원과 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한 쟁점을 안고 있어 문제 해결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일대에 매장된 천연가스와 석유 획득 경쟁은 물론 남중국해와 이어지는 해상교통로이자 전략적 요충지에 대한 해양억제 등의 문제가 결부되어 있어서다. 올해만 하더라도 중국이 센카쿠 열도 주변 일본 영해를 침범하며 도발을 일으켰고, 아베 신조 총리는 ‘전쟁 가능한 국가’를 위한 개헌을 추진하는 가운데 일본은 센카쿠 열도에 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센카쿠 열도를 지킨다며 ‘일본판 해병대’인 육상자위대 수륙기동단(ARDG)을 창설하기도 했고, 여기에 경찰까지 전담 부대를 창설하면서 군경이 합작해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과 중국 사이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의 긴장이 대표적인 분쟁 사례로 꼽힌다. ⓒWikimedia Commons/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과 중국 사이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의 긴장이 대표적인 분쟁 사례로 꼽힌다. ⓒWikimedia Commons/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100년 넘게 지속된 포클랜드 분쟁

남극대륙과 남아메리카 대륙 사이 남대서양에는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가 놓여 있다. 이곳은 현재 영국의 해외 영토지만 지리상으로는 아르헨티나와 가장 가깝다. 영국인 탐험가 제임스 쿡이 1775년 이곳을 발견하고 영국 영토로 선언했지만 1900년대 들어 아르헨티나가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섬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영국인이지만, 이 섬에 최초로 거주한 사람은 아르헨티나 사람이라는 주장이다.

 

양국의 분쟁 원인 역시 인근 해상에 매장된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더욱이 남극의 탐사를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요충지 역할도 할 수 있다. 급기야 두 나라는 1980년대 포클랜드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1982년 4월 아르헨티나가 국내 정치 불안정 문제로부터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포클랜드를 침공하며 양국은 교전을 개시했다. 75일간의 전쟁 끝에 아르헨티나의 항복으로 전쟁은 종결됐지만 이후 30여 년 간 협상이 진행되다 결렬되는 과정이 반복되며 양국 간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영국의 영유권을 더 인정하는 분위기다. 2009년 두 국가가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인근 해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자료를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 제출했는데, 2016년 CLCS는 영국의 영유권을 인정했다. 더욱이 2013년 3월 포클랜드 주민들을 상대로 어디에 속하기를 원하는지를 묻는 투표를 시행했는데, 투표 결과 98.8%가 영국령으로 남고 싶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최근에도 중국과 필리핀과의 남중국해 스카버러섬(중국명 황옌다오) 해상 대치, 일본과 러시아의 쿠릴열도(일본에선 북방영토)를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며 화약고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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