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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속에서 젊은 세대 세계관 들여다보기   
활자 속에서 젊은 세대 세계관 들여다보기   
  • 고수아 기자
  • 승인 2019.10.03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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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속에서 젊은 세대 세계관 들여다보기   

 

 

ⓒDave Weatherall, Unsplash
ⓒDave Weatherall, Unsplash

 

훈민정음 창제와 한글의 우수성을 기념하는 한글날.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게 됐다는 새로운 뉴스에 우리나라 젊은 세대의 문화적 위력을 느끼는 건 섣부른 오해일까. 훈민정음 속에서 유영하는 젊은 세대의 언어 트렌드를 살펴본다.

 

야민정음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

‘머박(대박)’, ‘커엽다(귀엽다)’, ‘댕댕이(멍멍이)’는 온라인상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야민정음의 사례다. 올해 초 팔도는 비빔면 출시 35년을 기념, ‘괄도네넴띤’으로 판매해 폭발적인 반응을 맛봤다. 이처럼 MZ 세대의 취향을 공략한 비즈니스 성공 사례에 힘입어 국내 의류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많은 기업들의 화두가 MZ 세대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들의 호응을 이끌어내 마케팅 수혜를 누리고자 하며, 이에 야민정음 마케팅도 고려 대상에 들어간다”고 전했다. 야민정음은 신조어라기 보단 기존 활자의 시각적 인지에 새로운 사고패턴을 제공하는 파괴적 창조로 볼 수 있다. 언어는 사회성을 지닌 의사소통의 기호다. 언어 사용의 관찰로 그 시대의 사고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젊은 세대가 즐겨쓰는 야민정음에도 일종의 규칙과 그들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MZ 세대가 각종 시장 트렌드를 주도하는 만큼 야민정음 분석 원리도 정립되어 있다. 우선 야민정음은 1장부터 3장까지 존재한다. 1장의 규칙은 ‘비슷한 글자는 빠른 타자를 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귀는 커로, 대는 머로, 광은 팡이 된다. 커엽다(귀엽다), 세종머왕(세종대왕), 광역시(팡역시), 유재석(윾재석) 등의 쓰임이 가능한 이유다. 2장의 규칙은 ‘획이 많은 한자는 선비나 쓰는 것’이라는 규칙이 있다. 2장에 따르면 일본은 ‘티본’이되고, ‘김씨’ 성은 ‘숲씨’ 성이 되며 신라면은 푸라면이 된다. 3장은 ‘글자는 어느 방향에서든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곤뇽과 ㄸ뚜ㅁㄸㄸ는 각각 180도와 90도를 돌려 읽으면 정상 단어인 육군과 비빔밥으로 해석할 수 있다. FIV도 젊은 세대들에겐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가능한 의사소통 수단이 된다. 야민정음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물론 차이가 존재한다. 단순한 한글 파괴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진호 교수는 야민정음을 젊은 세대의 “발랄한 문자 놀이”로 지칭하며 야민정음의 사례가 한글 창제 직후에도 있어왔다고 서울대저널 기고 칼럼을 통해 설명한 바 있다. 해당 칼럼은 당시 젊은 세대들의 댓글 환호를 받으며 한 아이디는 “천박하다고 배척하지 않고,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로 바라보며 좋은 점을 인정해준다”고 감탄했다.

 

활자 안에서 새로운 유영을 시도해 온 MZ 세대의 텍스트 문화에는 사실 온라인 커뮤니티의 공이 크다. 야민정음의 짧은 역사 속에서 디시인사이드의 국내야구 갤러리는 언어 발전의 본거지가 됐다. 이후 점차 범위를 넓혀 이제는 TV 채널 및 유튜브 광고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이를 두고 해당 온라인 커뮤니티를 즐겨 이용한다는 모 대기업 직장인 A씨는 “회전과 압축, 한자와 로마자 이용까지 재미를 위한 ‘시도’와 이로 연쇄되는 ‘반응’에 중점가치가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사용자들이 쓰는 걸 보고 바로 자신의 언어로 적용하는 편인데 다들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소확횡과 퇴준생, 급식체와는 또 다른 급여체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는 1980년대 초(1980~1982년)부터 2000년대 초(2000~2004년)까지 출생한 세대로 80% 이상의 대학진학율과 IT 사용에서 친숙함을 느낀다는 공통점이 있다. Z세대(Generation Z)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를 통틀오 일컫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말한다. ‘트렌드 MZ 2019’에선 “취향 저격, 즉흥적 일탈, 일시적 만족, 인스타그램, 소신 표현”등의 키워드로 “(기존 시장 질서를 지배하는 제품의) 가격이나 품질, 브랜드 같은 전통적 소비 의사결정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MZ 세대의 특징을 설명한 바 있다.

 

MZ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활자를 하나의 언어 체계로 분류하면 ‘급식체’와 ‘급여체’로 나뉜다. 급식체가 중, 고등학생의 Z세대 특징을 반영하고, 주로 초성체나 ‘꿀’, ‘개’, ‘핵’ 등으로 과장과 축약에 집중하는 패턴이 있는 반면, ‘급여체’는 밀레니엄 세대의 경험에 따른 감성이 녹아있다. 이를테면 상사병은 언어 그대로 상사병이다. ‘상사를 보기만 해도 힘들다’는 뜻이 담겨있다. 직장인의 반이 퇴준생이라는 ‘웃픈’ 현실 속에서 소확횡(소소하고 확실한 횡령, 예: 커피믹스)과 퇴준생(퇴사준비생) 등 경험 위주의 새로운 표현으로 사용된다. 영국의 유명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유머는 외국어로 번역하는 경우 가장 망하는 재능이다”고 말한 바 있다. 2019년에도 현재 진행 중인 MZ 세대의 언어 습관에서 소소한 재미를 얻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한글의 우수성과 가치를 새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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