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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성 속 희망을 갈망하는 청년들, 변화를 주도하다
익명성 속 희망을 갈망하는 청년들, 변화를 주도하다
  • 김남근 기자
  • 승인 2020.01.10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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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성 속 희망을 갈망하는 청년들, 변화를 주도하다

 

 

ⓒPixabay

 

최근 20대 사이에서는 각 학교 커뮤니티나 어라운드 앱과 같은 익명 채널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 젊은 세대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SNS를 비롯한 다양한 커뮤니티 속에서 자신의 관심사만 업로드 하는 두 번째 계정을 활용하거나 닉네임을 변경하며 오가는 등 마치 ‘유령(Phantom)’과 같이 행동한다. 이에 사회학자들은 단타성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팬텀세대(Phantom Generation)’라는 이름으로 정의하고 있다.

 

새롭게 등장한 사회 트랜드 ‘팬텀세대’

‘팬텀세대(Phantom Generation)’는 뮤지컬로 유명한 ‘오페라의 유령’ 속 팬텀과 같이 강력한 목소리를 내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고 소통하는 젊은 세대를 의미한다. 유령이라는 뜻의 ‘팬텀(Phantom)’과 세대를 뜻하는 ‘제너레이션(Generation)’이 결합한 만큼, 이들 세대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장소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특성을 보였다. 최근 SNS와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으로 증가하는 팬텀세대는 익명성에 기반을 둔 단타성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사회변화를 이끄는 주도층으로 부상했다. 

 

팬텀세대는 단순한 익명 보장을 넘어 자신의 취향이나 관심사에 집중하는 새로운 계정을 만들거나 닉네임을 바꾸는 일명 ‘닉네임 세탁’ 등 온라인상에서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흔적을 지우는 데 주력한다. 또한,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이들의 표현은 과격하고 현실적인 특성을 보였다. 이외에도 사회 문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취업준비생이자 노동자의 자식들로서 익명에 기댄 팬텀세대 청년들은 하나의 통일된 목소리를 나타낸다. 실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20대 지지율은 0%에 수렴했다. 반면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전체 세대 중 가장 높은 96%로 통일된 모습을 보였다. 이는 해당 여론조사에 응답한 다른 세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팬텀세대들의 특징이 두드러진 부분이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의 곽금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익명이 아닐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이나 직분 등 사회적 여건에 의해 감정을 절제하게 된다”라고 말하며 “익명 게시판은 대중이 자기감정과 속내를 솔직히 드러낼 수 있는 기능을 수행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곽 교수는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20대의 성향을 보여주는 사회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사회 혁신의 주도층으로 부상하다

사회 각계 전문가들은 팬텀세대가 사회변화를 이끈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난 2010년도 이후 등장하고 있는 대학교별 자유 커뮤니티, 일명 ‘대나무숲’과 애플리케이션 ‘어라운드’ 등 익명 채널을 중심으로 사회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20·30대 청년층이 주를 이루는 팬텀세대는 익명이 허용하는 자유의 범위 속에서 강력한 행동력과 목소리로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고 있다.

 

집회의 현장 속에서도 팬텀세대의 활동은 빛을 발한다. 익명성을 바탕으로 온라인에서 모임을 계획한 이들은 오프라인에서 함께 마스크를 쓰고, 피켓을 드는 등 행동했다. 익명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만큼 이들의 집회에는 주동자도, 대변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그러한 익명성 속에서 창의성과 유쾌함으로 변화의 흐름을 이끌었다. 2016년 이화여자대학교의 학생시위는 이들 팬텀세대로 불리는 익명의 개인들이 오프라인에서 목소리를 낸 대표적 사례로 기억된다. 당시 이화여자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이화이언’의 익명게시판 ‘비밀의 화원’에 모인 익명의 학생들은 학교 점거농성 계획을 토론하고 구체화하며, 물품지원, 모금 등도 익명으로 진행했다. 이후 집회 장소에 모인 학생들은 서로를 ‘벗’으로 부르며 행동은 함께하지만, 학번과 이름 등 개인정보는 묻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동등성과 공평성이 강조될 수 있었던 부분이다. 당시 집회에 참여한 한 학생은 “평범한 학생들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누군가의 주도나 선동이 아닌 모두에게 동등한 발언의 기회가 제공된 것이 핵심이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김영기 수석연구원은 “팬텀세대가 만들어낸 소셜 민주주의는 사회에 파급력을 가지며 모두가 의사 결정권자로 참여의식을 가지는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현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팬텀세대들의 활동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시위 문화를 탄생시켜 세계 사회에 한국형 민주주의를 알리는 데 기여했다. 정치적 이슈와 투쟁을 제외한 문제의 본질을 강조해 20대 만의 독특한 문화로 자리매김한 팬텀세대. 이들의 새로운 민주주의가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한국 사회를 혁신으로 이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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