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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가 없는 조직, 홀라크라시
보스가 없는 조직, 홀라크라시
  • 임성희 기자
  • 승인 2020.01.21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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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가 없는 조직, 홀라크라시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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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는 IT기업을 중심으로 조직구조 혁신이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 수평적 기업문화 구축에 성공한 구글, 페이스북 등을 본보기로 삼아 다양한 IT기업들이 의사결정 및 실행, 조직구조, 보상 등 전반에 걸쳐 과감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기업문화 혁신과 업무환경 개선을 위해 다수 기업들이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에 뛰어들고 있다.

 

조직구조 혁신으로 소통의 통로를 열다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 2016년 ‘스타트업 삼성 컬쳐혁신’을 선포하며 3대 컬쳐 혁신 전략으로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 업무 생산성 제고, 자발적 몰입 강화 등을 제시했다. 기존의 수직적 기업문화가 아닌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을 위해 부장, 차장, 과장 등의 호칭을 ‘프로’나 ‘님’ ‘매니저’ 등으로 통일했으며, 불필요한 회의나 보고도 줄여 빠른 실행과 열린 소통으로 혁신을 꾀하겠다고 했다. LG전자도 역시 호칭은 유지하지만 능력에 따라 과장이나 차장도 기존 부장이 맡던 팀장이나 부서장을 맡을 수 있도록 했다. 수직적 조직문화를 바꿔 사장부터 사원에 이르기까지 상급자가 아니라 부서와 회사를 위해 일하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IT 업계의 성공적인 리더로 손꼽히는 자포스의 토니 셰이가 도입한 ‘홀라크라시(Holacracy)’는 최근 관련 업계는 물론, 기업 경영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전체를 뜻하는 그리스어 ‘holos’와 통치를 뜻하는 ‘cracy’가 합쳐진 말로 최고경영자가 없는 경영체계를 뜻하는 홀라크라시는 의사결정이 상위계급에 속하는 게 아닌 조직 전체에 걸쳐 분배돼있는 조직형태다. 홀라크라시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은 조직을 구성하는 여러 서클(circle)들이 각자 고유의 권한을 행사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부서나 직책에 상관없이 그 일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직원에게 업무를 할당함으로써 과거의 관료적인 조직을 보다 민첩하고 적응적인 조직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신발 판매회사 자포스의 CEO 토니 셰이는 사내 관료주의 때문에 혁신이 둔화되고 자유분방한 문화가 힘을 잃었다고 판단하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홀라크라시 제도를 도입해 자포스를 보스가 없는 완벽한 수평구조로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1,500명이나 되는 직원들의 직위를 없앰으로써 의사결정의 병목현상을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홀라크라시 도입 이후, 자포스 내 계층 구조는 완전히 사라졌고 모든 직원들은 동등한 입장에서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회사에 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됐다.

 

파격적인 실험에 진통도 잇따라

일각에서는 홀라크라시 시스템이 상당히 파격적이어서 직원들이 적응하기 어렵고 의사결정의 비효율, 낮은 동기부여 같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실제로 토니 셰이가 이런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직원에게 퇴직 장려금을 줄 테니 떠나라고 권고하자 18%의 직원이 퇴사하는 사태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홀라크라시를 시행한 뒤 자포스의 가장 큰 변화는 회의가 많아졌고 길어졌다는 것이다. 의사 결정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린다는 홀라크라시의 단점이 드러난 셈이다. 그러나 토니 셰이는 “새로운 조직문화로의 이행에는 시간이 걸린다”며 홀라크라시 운영 방식을 밀고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홀라크라시 제도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관리자들을 모두 없애는 과감한 시도를 했으나 시행 6개월 만에 포기를 선언한 ‘쉘 오일’의 사례를 든다. 당시 쉘 오일의 상당수 직원들은 힘들여 얻은 관리자로서의 의사결정권을 빼앗기는 데 반발해 회사를 그만뒀다. 하지만 반대로 성공한 사례도 있다. 세계적인 토마토 가공회사 ‘모닝스타 컴퍼니’는 최고경영자가 없어도 연 매출 7억 달러에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은 이 실험에 성공하며 지나친 관료주의가 지나친 경쟁의식을 유발하여 직원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걸 증명했다.

 

국내에도 홀라크라시를 도입한 기업이 있다. 전 세계의 가치 있는 브랜드를 발굴하는 수입 유통회사 ‘코넥스솔루션’은 홀라크라시 제도를 기반으로 ‘위리더십’을 만들어 빠르게 변하는 업무 상황에 대처해 주목받고 있다. 코넥스솔루션은 다른 회사와 달리 팀별로 조직이 구성된 형태가 아니라, 각 브랜드별로 필요한 역량을 갖춘 사람이 모여 조직을 이루고 있다. 특히, 브랜드 단위를 ‘셀’이라 칭하며 각 셀마다 갖고 있는 비전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구축했다. 코넥스솔루션 관계자는 “홀라크라시 도입 초기, 구성원들마다 홀라크라시에 대한 이해도가 모두 다르고 기존에 갖고 있던 습관이나 생각에서 탈피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각각의 구성원들이 ‘나는 단순한 직원이 아니라 사장이다’는 기업가 정신을 통해 회사 전체 성장에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또한,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구축해도 내부 구성원이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결국 그 시스템은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함께 일하는 사람을 뽑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며 정기적으로 회사 설명회를 개최해 코넥스솔루션에 관심 있는 지원자 중 적합한 사람을 발견할 경우, 티타임 등의 면접 과정을 거쳐 채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격적인 실험에 따른 진통도 일부 있지만, 기업문화가 혁신의 원동력이라는 공감대가 깔린 만큼 사내 관료주의 타파를 위한 기업들의 실험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평적 소통구조를 바탕으로 변화를 꾀하는 기업들의 다양한 시도가 어떤 결과를 보일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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